전쟁 추경과 대국민 직접 지원금이 결합되면서 안보 위기가 재정 포퓰리즘의 정당화 기제로 고착되고, '위기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복지 범주가 탄생한다.
한반도의 장기적 안보 위기가 역대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촉발한다. 대규모 국방비에 대한 국민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전쟁 대비 예산안에 '국민 회복력 배당금' — 전 가구 대상 직접 현금 지급 — 을 붙인다. 이 메커니즘은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위기가 가라앉아도 지급 중단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야당은 이를 '위기 기본소득'으로 재명명하고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다. 3년 내에 팬데믹, 기후 재난, 사이버 공격 등 어떤 국가 비상사태든 국방비와 국민 지급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영구적 재정 구조가 형성된다. 국가 부채는 치솟지만, 제도에 대한 선거적 지지는 철벽이다. 안보 정책과 사회 복지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다.
2028년 4월 어느 목요일 저녁, 대전에 사는 34세 배달 기사 박진영이 은행 앱을 확인한다. 알림에는 '국민 회복력 배당금 — 450,000원 입금'이라고 적혀 있다. 미사일 방어 배치와 잠수함 조달에 관한 뉴스 헤드라인을 스크롤해 넘긴다. 아내가 저축할지 자동차 할부를 갚을지 물어본다.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다음 분기에도 또 나와. 이제 못 끊어.' 주방 조리대 위의 아기 모니터에서 잡음이 섞인 소리가 흘러나온다.
위기 기본소득은 역사상 가장 솔직한 복지 메커니즘일 수 있다. 기존 복지 프로그램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배제하는 관료적 자격 심사에 매몰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상사태에 지급을 연동함으로써 이 제도는 소득 심사를 완전히 우회한다. 필수적인 국방비에 대한 국민 동의를 유지하는 비용이 보편적 현금 지급이라면, 이는 복지 경제학자들이 설계한 어떤 것보다 효율적인 사회 계약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