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추경과 대국민 직접 지원금이 상시적 제도로 고착되며 평시 재정 규율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멸한다.
지역 분쟁, 팬데믹 여파, 기후 재난 등 중첩된 위기의 연속이 끊김 없는 긴급 추경 사슬을 만든다. 임시 구제로 시작된 국민 직접 현금 지급은 정치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기득권이 된다. 국가부채 대비 GDP 비율이 120%를 넘지만 비교 가능한 모든 경제가 같은 궤도에 있기에 국채 시장은 평온하다. 긴축에 훈련된 재정 정책 세대가 은퇴하고, 정상적 예산 주기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관료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결과는 붕괴가 아니라 기이한 새로운 안정이다: 위기 대응에는 놀라울 만큼 효과적이지만 장기 투자에는 구조적으로 무능한 영구 동원 재정 국가.
세종시 예산실 분석관 김상호(34)가 2029년 3월 어느 아침, 7년 공직 생활에서 긴급 지출로 분류되지 않은 예산을 단 한 번도 작성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점심시간에 상사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정상 예산이 대체 어떻게 생긴 건데?' 둘 다 대답하지 못한다.
역사는 영구적 비상 지출이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 통화 위기, 초인플레이션, 정치적 격변을 통해 — 끝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채권 시장의 평온은 진정한 신뢰가 아니라 조율된 중앙은행 개입이 가능케 한 집단적 환상을 반영할 수 있다. 그 조율이 깨질 때 조정은 급격하고 가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