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정당성이 의회 심의보다 카리스마 있는 AI 기업 경영자들이 진행하는 장편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이동한다.
세련된 인터뷰와 다큐 해설로 시작된 콘텐츠는 곧 병렬적인 정책 교실이 된다. 장관, 기자, 유권자는 안전, 성장, 국가적 운명에 대한 창업자 주도의 서사를 함께 소비하고, 더 느린 민주적 토론장은 주목과 권위를 잃는다. 규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점점 공적 감독의 증거 논리보다 미디어 설득의 감정 논리를 따라간다. 사회는 기술 변화에 대한 공통 언어를 얻지만, 그 언어는 본래 검증 대상인 기업이 쓴 것이다.
서울의 한 부처 사무실, 오전 6시 40분. 젊은 정책 보좌관은 위원회 회의 메모를 정리하며 창업자의 주간 브리핑 쇼를 틀어 놓고, "정렬된 번영"이라는 문구를 장관 발언문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같은 미디어 생태계가 기술 논의를 더 넓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기본적 이해 수준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같은 형식을 재가공해 기업 서사에 맞서는 대항 해설 채널을 만든다. 위험은 이야기 자체가 거버넌스를 완전히 대체하는 데 있지 않고, 거버넌스를 선점할 만큼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한 부류뿐이라는 데 있다.
요즘 정책 회의보다 먼저 듣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장관보다 앞서, 기업 대표의 인공지능 브리핑이 기준을 깔아두죠. 기업 강연과 팟캐스트 문장이 회의실로 바로 들어옵니다. 2024년 미국 연방기관의 인공지능 규제는 59건까지 늘었죠. 그런데 현장에선 검증표보다 정렬된 번영 같은 문장이 더 빨리 복사됩니다. 회의 자료보다 홍보 문장이 먼저 공유되죠. 그 표현을 기자가 기사로 옮깁니다. 의원은 청문회에서 되풀이하죠. 감독기구도 이미 유행한 서사에 맞춰 질문을 짭니다. 기술을 설명하는 공통어를, 감시 대상 기업이 먼저 설계하는 셈입니다. 법안은 결국 사람이 통과시킵니다. 다만 그 전에 문장부터 빌리고 있죠. 우리는 정책을 심의하는 걸까요. 아니면 편집된 미래를 승인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