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노동의 대부분이 문서 생산과 예외 처리였음이 드러나면서, 엘리트 화이트칼라의 지위는 AI가 내린 결정의 결과를 법적으로 떠안는 사람들에게 이동한다.
더 이상 명망 있는 직업은 분석가나 관리자, 전략가가 아니다. 책임담당자다. 병원, 은행, 물류기업, 학교는 자동화된 권고 위에서 돌아가지만,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칼날 아래 놓을 인간의 목을 요구한다. 예외 대기열을 감독하고 책임 확인서에 서명하며 언제 기계를 뒤집을지 결정하는 새로운 전문 계층이 등장한다. 이들은 보수가 높다. 고도로 자동화된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희소한 부품, 즉 사회가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음울한 종류의 안정성이다. 책임은 실질이라기보다 비난을 보낼 주소로만 남는다.
인천의 작은 아파트, 밤 11시 30분. 서른여덟 살의 전직 컨설턴트 지은은 종양 치료 예외 승인 파일을 읽은 뒤 바이오 서명을 눌러 병원의 치료 결정 번복안을 승인한다. 그녀는 전략 업무 때보다 더 많이 벌지만, 언젠가 가족들이 왜 기계가 결정을 내리게 두었느냐고 물을 것을 대비해 별도의 휴대폰을 따로 둔다.
옹호자들은 적어도 이름이 명시된 책임이 있어야 기관이 불투명한 시스템 뒤에 숨고 책임을 절차 속에 녹여 없애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자들은 이 모델이 인간 책임의 외형만 보존한 채, 실질적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도덕적 부담을 보험에 가입한 소수 서명자에게 집중시킨다고 본다.
요즘 회사에서 끝까지 남는 역할이 바뀌고 있죠. 기획자보다 책임 서명자가 더 비싸집니다. 판단보다 책임의 주소가 중요해진 겁니다. 맥킨지는 업무시간의 최대 70%가 자동화 대상이 된다고 봤죠. 초안 작성, 분류, 규정 대조가 먼저 빠집니다. 병원과 은행은 중대한 AI 결정마다 담당자 이름을 남기기 시작했죠. 그래서 조직은 판단자보다 승인자와 실명 책임자를 앞줄에 세웁니다. 이건 직장 안에서만 끝나지 않죠. 대출, 보험, 진료 승인에도 같은 구조가 번집니다. 사람은 판단의 주체보다 호출될 이름표에 가까워집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 이름이 가장 먼저 불리죠. 겉으로는 책임의 주소가 또렷해졌죠. 그런데 남은 인간의 역할이 판단일까요. 아니면 비난을 대신 받는 자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