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엔지니어링, 보안 업무 전반에서 AI 에이전트가 평균적 전문가를 앞지르자, 인간 노동은 책임 있는 최종 서명을 지는 희소한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소수의 검토자가 유능한 에이전트 무리를 감독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지식경제의 중간층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든다. 남는 인간 역할은 폭넓은 생산이 아니라 법적 노출이다. 즉, 서명하고 인증하며 문제가 생기면 처벌받는 일이다. 이름 자체가 보험 가치를 지닌 허가된 승인자 계층이 새롭게 떠오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에이전트 시스템에 맥락을 공급하고 유지보수하며 예외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놓고 경쟁한다. 생산성은 오르지만 전문성의 사회적 의미는 평판 담보물로 축소된다.
마닐라의 한 임대 아파트, 밤 9시 15분. 전직 컨설턴트였던 한 여성이 생체 인증 승인을 기다리는 184개의 결정 대기열을 바라본다. 자정 전까지 세 대륙의 리스크 이전 서류에 서명해야 하고, 잘못된 한 번의 서명이 십 년의 저축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아래에서 돌아가는 에이전트들은 잠들지 않는다.
옹호자들은 이제야 구조가 정직해졌다고 말한다. 기계가 생산하고 인간이 통치하며, 책임이 더 이상 위원회 속에 숨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사회가 판단을 좁고 임대료를 추출하는 카스트로 바꾸었고, 수많은 사람을 권한 없는 지원 역할에 가두었다고 비판한다.
요즘 회사는 사람을 줄여도, 책임은 남겨둡니다. 일을 없애는 게 아니라 마지막 서명만 사람에게 남기는 식이죠. 보고서 작성, 결제 승인, 설정 변경까지 에이전트가 처리합니다. 내부 평가에선 위험 과업 97%를 막아도 실제 신뢰성은 낮았죠. 그래서 회사는 사고 뒤에 이름을 올릴 사람을 찾습니다. 책임 서명이 새 직무가 되는 셈이죠. 실무보다 서명이 희소해진 겁니다. 이 흐름은 조직도를 납작하게 만듭니다. 신입이 배울 구간이 줄고, 중간관리자 자리도 얇아지죠. 병원과 금융에선 판단력보다 법적 노출을 견디는 자격이 더 비싸집니다. 다수는 예외 처리와 맥락 공급에 머물 겁니다. 사람의 값이 실력보다 서명으로 이동하고 있죠. 편리함은 커지는데, 앞으로 통제권은 누구 손에 남게 될까요.